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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같은 하루

  •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 2023년 9월 15일
  • 3분 분량

오늘도 영원과 같은 하루가 지나간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는 어른들 말씀이 맞았다. 마흔이 넘자 흘러가는 시간 앞에 무력감마저 느낀다. 성경에서 솔로몬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적었다. 하늘 아래 더 이상 새로운 경험은 없을 것만 같은 날들이 펼쳐지자 미래를 계획한다는 것의 부질없음을 느낀다. 인간은 매일 오늘 하루만 살 수 있는 존재다.

저마다의 인생에는 화두가 있고 삶이 의미를 갖는 건 우리가 그 화두를 풀기 위해 희노애락을 겪기 때문일 것이다. 당장 수억이나 빚을 진 사람에게 돈보다 중요한 건 없고, 평생을 학문에만 헌신해온 사람에게 주식 선물 차트의 추세선은 무의미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추세선의 결과에 따라 인생이 바뀌거나 인생이 끝나기도 하는데 말이다.

달리는 말과 같이 기술이 좋아지고 삶의 여건이 풍요로워졌지만 인간이 고민하는 바는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이 갖고, 더 건강하게 살면서 다양한 쾌락을 누리고 반대로 고통은 피할까, 궁리 중이다.

이런 욕망은 인간만이 갖는 숙명이자 원죄의 근원이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신의 말씀을 끝내 어기고 “혹시나” 하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했던 아담과 이브는 욕망의 선조다. 이후 자신이 헐벗었음을 알게 된 두 사람이 에덴 동산을 탈출하면서 인류는 사물에 이름을 붙이고, 언어를 만들게 되면서 욕망을 좇아 발전하는 듯보이지만, 그 욕망의 바벨탑은 결국 무너지고 인간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그렇다고 이걸 종교적 관점에서 불행이라고 부른다면 편협한 해석일 것이다.

인간은 욕망을 갖게 되면서 행복을 알게 되고, 행복은 불행이 없다면 성립되지 않는 개념이니 말이다. 인간이 무언가를 욕망한다는 건 그가 의미를 좇는다는 말이 된다. 가만히 있으면서 영원한 것은 의미를 가질 수 없다. 자리를 옮겨 흔들리고,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갔다가 또 다시 추락하면서 위치 에너지도 바뀌지만 의미 역시 생성되게 마련이다. 요컨대, 우리가 발버둥을 치며 각자의 욕망을 추구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건 다름 아닌 의미를 갖기 위해서다.

의미는 숨바꼭질 같다. 욕망은 브레이크 없이 꽉 채우면 행복할 것 같아도, 그 끝이 파멸로 치닫는 경우가 많다. 인간의 판타지와 달리 신의 주사위가 던져질 때, 인간의 운명은 바로 이 의미를 찾기 위해 결정된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 요컨대 인생에 펼쳐지는 사건들은 순열적이지 않고 병렬적이며 예상과 달리 변수가 많다는 걸 깨닫게 되면, 중요한 건 목적 달성이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숨바꼭질 게임이 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는 목적을 향해 달리며 사는 것 같아도 사실 그 과정의 크고 작은 의미를 줍는 게임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더 넓은 집에 이사 가기 위해 얼마를 모으겠다는 계획이나 제2의 인생을 위해 도시를 버리고 시골로 가겠다는 결정이나, 수 십년을 함께 살아온 배우자와 헤어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재혼하겠다는 결정 같은 것들이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선택한 게임이다.

그래서 큰 부를 이루려고 지독하게 자기를 계발하기 위해 스스로를 파고 또 파본 사람들이 문득 깨닫듯,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성장을 하는 과정이다. 죽을 만큼 일하는 건 부자가 되기 위한 수단이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라고 믿고 싶겠지만 실은 반대다. 부자가 되기 위한 과정이 곧 목표이며 돈벌이는 그 수단일 뿐이다. 아주 간단하지만 이 순서를 헷갈리는 사람은 평생을 고생한다. 돈을 벌기 위한 것처럼 보이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은 돈을 벌고, 어떤 사람은 돈을 못 벌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부차적이다. 이 과정에서 겹치지 않는 저마다의 의미를 얻게 된다. 월권해서 말하자면, 오직 이것만이 신의 관심사이며 우리 각자에게 가치 있는 삶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영원 같은 하루가 주어진 오늘, 내가 어제보다 얼마나 더 나은 인간이 되었는가에 관심이 있는 부류가 자기계발에 몰두하는 소수뿐이라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가 욕망을 좇기로 합의한 만큼 이 성취가 전 인류에게 닿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평생을 신에 귀의한 사제나 매일 방탕하게 사는 부랑자나 혹은 똑같은 직장에 출퇴근을 10년째 하고 있는 사람이나 인생의 목표가 행복이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다.

거창한 명분이나 대의가 있든 없든, 하루를 성실하게 살든 막 살든 우리 모두는 어떻게든 행복하게 위해 무슨 짓을 하면서 산다. 종교인은 행복에 닿는 기술을 범인보다 아주 조금 더 알고 능숙할 따름일 뿐, 밥을 세 끼만 연달아 굶으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는 점에서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같다. 그런데 그게 어쨌단 말인가? 인간이 배고픔과 성욕을 느끼고, 매일 화장실을 드나든다는 사실만으로 인간은 그저 동물적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존재일 뿐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동물적 본능이야 아무튼 의미를 위해 존재하는 ‘도구’일 뿐이다.

중요한 건 ‘더 행복하기 위해’ 우리가 매일 하는 노력이다. 화가 날 때 한 번 더 참고, 또 참으면 행복해지기는커녕 스트레스만 쌓이는 건 우리가 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고 적에게 뺨을 내어주고도 예수가 행복했던 이유는 그가 성장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행복의 강도와 범위를 넓히려면 인간은 성장해야 한다. 매일 자동차만 타고 출퇴근하던 사람은 지하철에 끼어가는 게 지옥 같겠지만,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난 사람은 인적 드문 북한산 정상을 오르면서도 지옥을 맛볼 수 있다. 이제 그에게 있어 행복한 매일 끼어 타는 그 지하철을 한 번이라도 더 타고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다.

유튜브를 보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려는 욕망으로 사는 우리에게 지금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잠깐 환기라도 시키는 글을 쓰고 싶었다. 한 권의 독서로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다. 평생 읽어도 모자랄 고전들이 도서관에 먼지 쓰고 버티고 있는데, 그 책들을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을 독자에게 이 책을 읽고 바뀌자고 말할 자신이 아직은 없다. 우리는 수많은 책과 수많은 경험과 수많은 생각들을 거쳐 아주 조금씩 잠에서 깰 뿐이다(반대로 조금씩 잠에 들 수도 있다).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사는지 고민하는 건 사춘기 이후에는 없을 것 같지만 흰머리처럼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삶의 질문들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묻는 그 질문을 마주했을 때 당황하지 않으려면, 미리 생각을 좀 정리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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