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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필작가는 천재? 의뢰자의 고유한 특성을 이끌줄 뿐

  •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 3일 전
  • 2분 분량

사람들은 대필작가가 타고난 재능으로 글을 잘 써주기 때문에 누군가의 의뢰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진실은 다르다. 작가가 글을 잘 쓰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가 생각을 보통 사람보다 더 오래, 깊게 하기 때문이다.

흔히 말하는 필력이나 문체의 기교 측면이 있지만, 단순히 몇 줄의 글이나 한 가지 주제의 짧은 글을 쓰는 것과 달리, 책 한 권을 긴 호흡으로 써내려 가야 하는 대필작가에게 글쓰기 역량이란 부차적이다. 물론 글쓰기가 직업인 대필작가는 글을 잘 써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직업을 생업으로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책을 대신 쓴다는 것은 의뢰자인 작가의 성향과 특성, 의도를 파악해서 기획을 하고 나아가 이를 수요자인 잠재독자층의 필요와 연결시켜야 하는 복합적인 과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문법에 맞는 글이나 개성에 맞는 문체를 만들려면, 상대하기 까다로운 대필작가보다는 챗지피티에게 의뢰하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실제로, 자신이 쓴 투박한 글감을 기계적으로 돌려서 책을 내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한 해에 자비출판으로만 약 4만 여권이 출시된다는 한 통계가 있는데, 그들이 모두 프로 작가가 아닌 이상, AI나 대필작가의 도움을 받아서 출판을 한다면 글쓰기의 기교 측면에서 책을 내려는 수요는 점점 AI로 치우쳐 가지 않을까?

그럼에도 대필작가 고유의 역량이라는 게 있다면, 결국 한 권의 책이 담고 있는 핵심 주제와 저자의 생각 깊은 곳에 잠재된 메시지를 일관되게, 특별한 구성으로 맞춰가는 능력과 이를 문장화하는 데 있다고 하면, 대필작가에게는 단순히 문장을 잘 쓰는 것 외에 남다른 특징이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앞에 말했듯 나는 이것을 생각의 깊이라고 생각한다. 대필작가는 재능을 타고난 사람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람보다 더 오래, 깊이 생각하는 사람에 불과하다.

‘그 사람은 왜 그 주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할까?’

‘지난 번 인터뷰이가 말한 키워드를 어떤 방향으로 풀어내야 할까?’

단행본 원고 기획에 핵심이 되는 이런 생각을 구체화하려면 어쩔 수 없이, 원고를 의뢰한 사람보다 더 깊이, 오래 생각해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원고를 의뢰한 사람이 대필작가를 고용하는 이유는 글을 쓸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할 시간이 없어서다. 사람이 하루에 8시간을 일한다고 하면, 어떤 분야의 책을 내려는 사람이 실무 외 5-6시간을 온전히 자기 책을 구성할 생각에만 할애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나 대필작가는 가능하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터뷰가 끝나면 저자가 말한 바를 오래 곱씹는다. 경험이 있는 작가라면 그의 생각에 축적된 과거의 원고 레퍼런스와 경험의 재료를 통해 창의성을 발휘할 수도 있다. 요컨대, 이 과정이 있어야만 의뢰자의 생각을 한 호흡으로 연결지어 글을 써나갈 수 있다. 대필작가는 시간으로 승부하는 직업이다.

 

우리 모두는 시인 또는 작가

사람들은 작가의 시적 역량을 과대 평가한다. 마치 삼행시처럼, 어떤 글감을 던지면 범인이 생각지도 못했던 문장과 단어들이 자판기 상품처럼 툭툭 뱉어낼 거라고 착각한다. 어떤 시인은 짧은 시 한 편을 위해 수개월을 착상에만 몰두하는데, 글쓰기가 생업인 작가가 시적 창발성을 상품화할 수 있을까? 기대가 지나치게 높은 것이다. 답은 의뢰자인 작가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다. 시적 발화의 재료들이, 이미 자신 안에 있는 줄 모르고 이를 전문가의 검증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미 우리 모두는 시인, 또는 작가이다. 그렇다면 대필작가의 역할이란 투박하지만 진실을 담은 저마다의 고유한 단어와 표현들, 제목들을 낚아서 눈앞에 텍스트로 보여주는 사람일 뿐이다. 그 행위 자체는 단순하다. 결국 내 책을 낸다는 것은, 종합 베스트셀러를 만들겠다는 저 기성 작가들과의 게임과 다르다. 내 고유한 성향을 얼만큼 차별화해서 가치 있게 만들어서 내 팬층을 두텁게 할 것이냐, 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필작가에게 글을 의뢰할 때도 자신을 믿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은, 필력과 문장력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거칠게 단순화하자면 대필작가는 프로듀서이고, 의뢰자인 저자는 가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프로듀싱을 통해 데뷔하려는 사람에게, 노래를 얼만큼 잘하느냐의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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