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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대필작가 생각의 말뚝을 심어주는 일

  •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 2024년 8월 5일
  • 3분 분량

진실은 늘 우리들의 생각과 다르다. 사람들은 자서전 대필작가에게 글을 맡기면, 그가 내 머릿속에 상상한 개념을 언어로 딱 맞게 구현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는 그것이 착각일 수 있음을 고객과 상담하는 자리에서 분명하게 밝혀준다. 세상에 그 어떤 위대한 작가도, 타인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하물며 고작 몇 번의 인터뷰로, 내가 어떤 사람의 평생을 이해하고 그의 언어로 그의 생각을 절묘하게 포착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차라리 사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사를 가서 입주청소를 맡겨본 사람은 알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입주청소가 내 마음에 쏙 든 적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남에게 돈을 주고 맡길 때 “내 마음처럼 해주길” 바라지만 세상에 내 맘 같은 일은 없다. 세상에 다른 그 어떤 일보다 내 맘처럼 해주길 바라는 고객들을 상대하다보니 깨닫게 된 것이다. 애당초 내 맘처럼 해줄 것 같으면 그 사람은 내 일을 대신해줄 이유가 없다. 내 맘에 쏙 들려면 내가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내 맘에 쏙 드는 글을 쓰려면 내가 직접 써야 한다. 그런데 내가 직접 글을 쓸 자신이 없거나 역량이 부족해서 남에게 자서전 대필을 맡긴다면, 그가 전문가로서 보편적인 상식을 토대로 일정 수준 이상의 결과물을 만들어주는 것으로 족해야 한다. 내가 직접 하는 게 싫거나 귀찮아서 아파트 입주 청소를 맡기면 손을 대기로 약속한 곳만 구석구석 청소를 했다는 점에 만족하는 것이 최선이다. 안 그러면 온갖 불만불평 투성이의 인생을 사느라 불행해질 것이다.

 

자서전 대필작가는 생각의 말뚝을 심어주는 일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스스로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이를 남에게 잘 표현하고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책을 자서전 대필로 맡겨 출판해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분명 적잖은 세월을 살아온 내 인생인데도, 남에게 이걸 객관적으로 설명해보라고 하면 중언부언하거나 말문이 막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남들이 보기에 주장이 꽤 강해보이는 사람도 사정은 다르지 않은데, 오히려 말하려는 바가 강력한 사람일수록 자기가 무엇을 그리도 강력하게 말하려고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 온전히 설명해내지 못하는 경우를 나는 종종 봐왔다. 이런 이들에게 유능한 자서전 대필작가란, 인터뷰를 통해서 그의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주고, 그의 생각의 좌표를 명확히 지정해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내 직업을 ‘타인의 생각에 말뚝을 심어주는 일’이라고 혼자서 정의내리곤 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정리해줄 수 있으려면 나 스스로의 생각이 늘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뚜렷한 인생관과 가치 체계, 옳고 그름에 대한 굵직한 정의 따위가 없어 물 흐르듯 생각하는 사람은, 제아무리 예술적으로 글을 잘 쓰더라도 이 일을 해낼 수 없다. 나는 이를 씨름에 비유하곤 하는데 내가 고객보다 생각의 힘이 세지 않으면, 고객의 생각에 휘둘려서 모래판에 고꾸라지고 만다.

고객의 날뛰는 생각의 고삐를 단단히 쥐고, 고객의 생각을 듣고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고객을 이끌어와야 한다. 그렇게 생각의 고삐를 쥐는 힘겨루기가 인터뷰를 통해 이뤄진다. 나는 몇 번의 인터뷰를 통해 상대방이 무슨 생각으로 책을 내려고 하는 것인지, 이 사람의 무의식에는 어떤 생각이 깔려 있는지, 현재 그가 세상에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를 민감하게 탐색하고 채집한다. 이러한 인터뷰 과정이 무난한 고객의 경우 대개는 출판 결과물도 만족스럽게 끝난다. 인터뷰 과정은 고객이 자기 생각을 환기하여 스스로의 욕망을 뚜렷하게 인지하는 계기가 되곤 한다. 이 과정에 집중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고객도 있는데, 자기 이름으로 낼 책을 위한 인터뷰인데도 될 대로 되라는 식이거나, 가장 흔하게는 ‘전문가니까 알아서 해달라’는 식으로 순진하게 모든 걸 내맡기는 경우는 오히려 대개 끝이 좋지 않다.

자서전 대필작가는 고독한 직업인 이유

 

노련한 자서전 대필작가는 고객인 작가의 어떤 욕망을 좌절시킨다. 대개는 본 건 많고 경험으로 부딪쳐 본 건 없는 어린아이와 같은 고객일수록 대하기가 어렵다. 심지어 어떤 작가는 인터뷰를 하기가 귀찮으니 자기가 전화로 녹음해준 파일을 챗GPT를 돌려서 글을 써달라고 한 경우도 있다(당연히 끝이 안 좋았다).

앞서 말했듯, 자서전 대필작업은 서비스직이다보니 고객의 생각을 이끌어갈 때도 고객이 기분 좋게 자기의 잘못된 생각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은 마땅히 버려야지, 라고 흔쾌히 자서전 대필작가의 제안을 따라오게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고객의 얼굴이 시뻘게져서 씩씩거리게 만드는 건 이쪽에서도 일을 꼬이게 만드는 요소다. 고객을 화나게 하느니, 끝까지 우기는 터무니없는 요구를 그냥 들어주는 편이 더 낫다.

 

거듭 말하지만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두 번째 문제다. 컨설팅을 받는 고객이 기분 좋게 돈을 써서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믿게 만드는 것은 단순히 영업능력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어떤 ‘주술’과도 같다. 출판의 경우는 당연히 책이 보기 좋게, 편집이 잘 되어 서점에 출고되는 것일 테다. 나아가 이 책을 지혜롭게 홍보해서 판매량이 올라가 베스트셀러 근처까지 올려다 놔주고, 더불어 책을 판매한 인세까지 통장에 꽂아주고 나면 고객은 주변에 나를 소개해 주기까지 한다. 나는 이 과정을 10년 동안 다듬어서 세상의 유일무이한 일로 만들어버렸다. 독점은 아니지만 고유하다는 측면에서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자서선 대필작가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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